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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넷플릭스 미드 리뷰) 산타 클라리타 다이어트

by 시나 Cinna 2019. 11. 22.

넷플릭스 미드│산타클라리타 다이어트

어느 날 좀비가 된 여자와 그의 가족들 이야기

재난물을 좋아한다. 재난물은 시련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자세히 보여준다. 그중에도 좀비물을 가장 좋아한다. 좀비가 해일이나 폭설과 다른 점은 특출난 능력이 없는 인간도 그에 대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좀비물 속 인간들은 주로 총을 무기로 좀비와 싸운다. 그러나 야구방망이, 삽, 휘두를만한 아무 물건만 있어도 희망이 생긴다. 썩어가는 시체앞에 선 인간은 산채로 뜯어먹히고 싶지 않아 의자를 꽉 잡고 괴물의 머리를 날려버린다. 갑자기 괴물로 변해버린 인간들 사이에서 두려움에 떨던 개인들은 어느새 결집해 다함께 살아나갈 방법을 모색한다. 그 과정에서 평범했던 개인이 영웅이 된다. 서로의 아픔을 만져주고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방법을 배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그럼에도 살아야할 이유를 찾아낸다.

좀비물은 크게 세가지로 분류된다. 첫번째는 좀비 바이러스가 나타난 시점을 다루는 것, 두번째는 바이러스가 확산한지 오래되어 이미 아포칼립스가 된 세상을 다루는 것, 세번째는 세상은 멀쩡하지만 주인공만 좀비가 되는 것. [산타 클라리타 다이어트]는 세번째다. 세번째 경우는 사실 좀비물이라기보단 뱀파이어물이나, 요괴물쪽으로 분류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첫번째나 두번째 경우의 작품 속 좀비들의 몸은 너덜너덜하지만 세번째의 좀비들은 매끈하고 매력적이고, 관객들은 그들이 인간을 먹는 걸 응원하게 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좀비물을 좋아한다고 썼지만, 사실은 좋아한다기보단, 끌린다. 좀비물은 말 그대로 피가 튀기는만큼 자극적이고 전개는 항상 빠르다. 공포와 스릴이 넘치다가 가끔 유머와 감동이 양념처럼 뿌려진다. 나는 언제나 좀비물의 인트로부터 강렬한 몰입을 경험하며 캐릭터들과 일체감을 느낀다. 영화를 보면 하루 종일 짜릿함이 유지되고 드라마를 틀면 앉은 자리에서 한 시즌을 다 봐버린다. 만화는 스무권도 뚝딱이다. 그런데 나는 자극에 쉽게 지치는 사람이다. 끔찍하게 선명한 자극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딱 이틀정도다. 장기가 터지고 비명이 난무하는 장면들을 그 이상 보고있으면 역겨움에 밥을 먹기도 힘들어진다. 재밌게 보던 작품을 갑자기 접어버린다. 뒷내용을 궁금해하기보다 앞내용마저 얼른 잊어버리기를 택한다. 그러니 좋아한다고 하기엔 애매하다.

그런데 산타 클라리타 다이어트는 두 시즌을 한달에 걸쳐 조금씩 나눠봤다. 잔인한 영상은 한순간에 해치워버리지 않으면 피곤해서 다시 꺼내보지 못하는 나인데. 섹시한 뱀파이어물에 가깝기때문일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산타 클라리타 다이어트는 '안녕프란체스카물'에 가깝다. 유머와 감동이 넘치다가 호러와 스릴이 양념이 된다. 다른 좀비물과 마찬가지로 주제는 사람들간의 연대의식이다. 산타 클라리타 다이어트는 가족끼리 똘똘 뭉쳐 문제를 해결하며 사랑을 확인하는 드라마다.

미국 산타 클라리타에 사는 쉴라는 어느날 좀비가 되고 그의 남편 조엘은 사랑하는 쉴라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의 딸 애비는 엄마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가족을 지키기위해 고군분투한다. 원래도 사랑이 넘치던 가정이었지만 위기 앞에서 더 돈독해진다. 그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처음 이 드라마를 틀었을 때는 주제가 가족애 일줄은 몰랐다. 좀비가 된 여자의 엽기 살인쇼 정도로만 생각했다. 주제가 가족애라는 정보를 먼저 접했다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지루할 것 같으니까. 개그물이라고 듣고 찾아보게됐고, 초반에는 그냥 미친듯이 웃기만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찡한 울림을 느끼게되었다. 공포와 스릴에 강한 끌림을 느껴도 가장 멋진 건 사랑얘기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쉴라는 가족에게 사람을 먹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손가락을 뼈채로 씹어먹는 바삭한 식감이 얼마나 별미인지 신장의 육즙이 얼마나 풍부한지 얘기한다. 가족들은 그런 대화를 견디기 힘들어하지만 쉴라에게는 죄책감이 없다. 눈치없는 태도가 상황을 나쁘게 몰고가진 않는다. 쉴라가 도움을 청하면 가족들은 열과 성을 다해 살인을 돕고 유대가 단단해진다. 쉴라의 태도를 나와 비교해봤다. 나는 가족이 부담스럽게 여길만한 나의 모든 일면을 자유롭게 밝힐 수 있을까?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내 선택은 물론 도주다. 가족들이 스트레스 받게하기보단 혼자 해결하기를 선택할 것이었다. 가족과의 결별이다. 그런데 엄마는 어떨까 상상해보니 조엘처럼 최선을 다해 날 도와줄 것 같았다. 살인을 돕진 못해도 날 위해 고기에 뿌려먹을 드레싱은 사다줄 것 같았다. 냉동고를 놓을 창고 마련에도 돈을 보태줄거고. 옷에 튄 피를 빠는 걸 깜빡한 내 등짝을 때리기도 하고. 산타 클라리타의 가족들이 서로에게 건내는 신뢰에 나는 행복해진다. 그 행복감이 희망적인 상상을 하게 하나보다.

드라마는 회를 거듭할수록 더 잔인해진다. 쉴라는 폭력성을 제어하지못하고 조엘의 정신은 무너져간다. 반복되는 살인 묘사는 엔터테인을 넘어 끔찍해지기시작한다. 그 잔혹함을 버티고 산타 클라리타 다이어트를 계속 보게한 건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유머다. 웃겨서 너무 좋다. 같은 장면을 여러번봐도 계속 웃기다.

캐릭터들은 너무 매력적이다. 사실 전형적인 캐릭터들의 모임이다. 터프한 여성과 소심한 남성 커플 두쌍이 주인공이다. 그렇기에 각자의 개성은 빛을 발휘한다. 터프한 캐릭터는 점점 대범해지고 소심한 캐릭터는 다정한 인성을 유지한다. 서로 '나다운' 모습을 찾는 것을 격려한다. 감동적이다. 전형적이지만 전형적으로 느껴지지않는다. 다른 많은 작품들처럼 터프한 여성들이 터프한 속성만 가지고 아무 활약없이 너드남친이 터프해지길 응원해주는게 아니라, 정말 터프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일을 벌이면 남자들이 수습한다. 산타 클라리타에서 비웃음을 사는건 보통 여성혐오적인 남성성이다. 애비는 여자를 가지고 논 남자들의 집에 수류탄을 던지고 얼굴을 후려갈긴다. 딱히 남자를 혐오하는 건 아니고 불의를 못 참는 것 뿐인데, 참 이상하게 불의를 일으킨 사람이 다 남자였을 뿐이다.

잔인한 걸 잘 보는 사람이라면 산타 클라리타 다이어트를 꼭 보면 좋겠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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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2까지 본 뒤 작성한 후기 (2016년 11월 작성)